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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사르비아총서 311)

심훈(沈薰)이 쓴 <상록수>는 너무도 유명해서, 설사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작자와 책명은 익히 알고 있으며, 그 내용까지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을 정도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ㆍ고교에서의 독후감 쓰기에도 <상록수>는 춘원(春園)의 <흙>과 함께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웬만큼 독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꼭 읽게 되는 작품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곧 그 개인이 살았던 역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의 예술도 따지고 보면 그 작가의 시각(視角)으로 포착한 역사의 증언일진대, 심훈의 <상록수>는 곧 심훈이 살다 간 역사를 우리들에게 증언해준 기록인 것이다. 그는 고등보통학교 시절에는 3ㆍ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된 적도 있었..
심훈(沈薰)이 쓴 <상록수>는 너무도 유명해서, 설사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작자와 책명은 익히 알고 있으며, 그 내용까지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을 정도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ㆍ고교에서의 독후감 쓰기에도 <상록수>는 춘원(春園)의 <흙>과 함께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웬만큼 독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꼭 읽게 되는 작품이다.

한 작가의 작품은 곧 그 개인이 살았던 역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의 예술도 따지고 보면 그 작가의 시각(視角)으로 포착한 역사의 증언일진대, 심훈의 <상록수>는 곧 심훈이 살다 간 역사를 우리들에게 증언해준 기록인 것이다.

그는 고등보통학교 시절에는 3ㆍ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된 적도 있었으며 그 후 중국으로 망명해서 유학하는 한편 여러 독립 운동가들과 교유하였다. 이때의 생활에서 소재를 얻어 쓴 것이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의 소설이다.

소설 <상록수>는 그가 충남 당진군 부곡리라는 농촌에서 한때를 보내며 쓴 것인데, 1935년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 모집에 응모해서 당선, 동 신문에 연재되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남주인공 박동혁(朴東赫)이 주동하는 한곡리의 농우회(農友會)는 바로 작가 심훈의 조카인 심재영(沈載英)이 주동하는 부곡리의 공동경작회(共同耕作會)의 활동상이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은 최용신(崔用信)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물론 작자는 일제(日帝) 치하에서 우리 겨레가 광복할 수 있는 길의 하나로서 농촌이 자립할 수 있도록 깨우치는 데 역점을 두고 썼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시대의 농촌 계몽 소설인 이 작품이 오늘날에도 독자들에게 시사(示唆)하고 있는 의의는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정치적인 의미의 예속만이 예속이 아닌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비록 일제의 예속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경제적인 측면 혹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상록수>의 계몽 정신이 좀더 우리들 가까이에 와서 웅변적으로 설득 작업을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설교성이 짙으면 염증을 내고 외면해버리기 쉽다. 그런데도 <상록수>는 어찌하여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일까? 작자의 의도적인 계몽 소설이면서도 소설의 생명이라고 할 문학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설교적인 냄새를 의식하지 못하고 드라마틱한 사건 전개라든지 작중 인물들의 세련된 대화 내용에서 지루하지 않은 긴장감을 갖게 되고 건강한 주제 의식에 매료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심훈은 <상록수> 당선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고, 이 학원은 현 상록초등학교의 모체가 되었다고 한다. 뿐더러 작자는 이 소설의 출판 일로 한성도서 2층에서 기거하다가 발병(장티푸스)해서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젊은 나이로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이 사실은 곧 소설 속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죽음처럼 독자를 숙연하게 하는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남주인공 박동혁이 주동한 농우회 회관이 낙성되던 날 언덕 위에 심었다고 하는 전나무와 소나무와 향나무들─이들 상록수들은 언제까지나 그 푸르름을 더해 가면서 작자인 심훈의 뜨거운 심장을 독자들에게 전해 줄 것으로 믿는다.
심훈 (沈熏, 1901∼1936)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917년 3월 왕족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19세)에 3·1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3월 5일 피검되어 7월에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이어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향주에 이르러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후일 '극문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42년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아내 이해영과 이별하였다. 1930년,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결혼하여, 『독백』『그날이 오면』등의 시를 발표했다. 그 후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3년 심훈은 장편 『영원의 미소』를 탈고하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이해영에 대한 회고적 작품 『직녀성』을 발표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자택을 짓고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심훈은 『상록수』를 쓰고 또 그것이 <동아일보>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탄 작품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큰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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