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양친의 슬하를 처음으로 떠나 란츠후트의 김나지움에 입학한 소년이 졸업하기까지의 9년 동안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하여 성장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묘사된 체험이란 결코 극적인 대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평범한 것이어서 소홀히 다루게 되는 것 속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실, 즉 영원의 문제가 숨겨져 있음을 카로사는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순수하고 천진 난만한 소년 시절을 경험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이란 성인이 되면 목전의 분망한 생활에 쫓기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차차 잃어간다.
그럴수록 천진스럽던 소년 시절의 추억은 더욱 빛나게 된다.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일깨워 줄 이 작품의 일독을 감히 권한다.
한스 카로사는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과 나란히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헤세나 토마스 만처럼 전문적인 직업 작가가 아니라 본업은 개업의였다. 따라서 전문적인 작가에 비하여 창작 활동상 많은 제약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작품이 비교적 적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불리한 조건을 미리 자각하여 그것을 메우고자 비상한 노력을 경주했다. 그래서 참으로 역량 있고 수준 높은 작품만을 저술했던 것이다.
의사인 동시에 시인이며 작가인 예는 아주 많다. 그러나 카로사의 경우처럼 의사로서의 실생활과 문학의 문제가 중요한 관계를 갖는 예는 극히 드물다. 슈니츨러나 벤이나 체호프의 문학을 생각해 볼 때, 의사라는 직업은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카로사의 문학은 의사라는 직업을 도외시하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한스 카로사는 1878년 8월 12일 남부 독일 오버 바이에른의 요양지 바트 퇴츠에서, 북부 이탈리아의 혈통을 이은 개업의인 아버지 카를과 뮌헨 출신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보냈다.
인간의 성격을 결정짓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쾨니히스도르프와 카딩 그리고 란츠 후트 등의 시골에서 보냈으며, 인격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대학 생활은 바이에른 주의 뮌헨에서 보냈고, 그 이후의 대부분의 생애는 다뉴브 강가의 파사우와 그 근교에서 보냈다.
따라서 《루마니아 일기》와 《이탈리아 여행》을 제외한 그의 모든 작품이 고향 바이에른을 무대로 하고 있다. 바이에른의 풍토, 특히 다뉴브 강, 이자르 강을 위시한 바이에른의 산수,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가 생활하던 전원 도시, 믿음이 강한 시골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그의 모든 작품에 깃들여 있다.
카로사가 처음으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나이에 부모의 곁을 떠나서 란츠후트의 김나지움에서 공부하던 시절이다. 카딩에서의 유복하던 생활에 비하여 너무나도 살벌한 기숙사의 분위기,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수업, 너무나 엄격한 선생님들 -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자유를 박탈당한 소년 카로사는 한편으로는 맹렬한 향수에 젖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에 대한 반항심에서 여러 가지로 짓궂은 장난을 하게 된다. 이 장난이 지나쳐 어느 날 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받는 시간에 그는 도서관에서 《가정시가집家庭詩歌集》을 빌려 읽는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클로프슈토크, 괴테, 뫼리케의 시에서 그는 기이하게도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동시에 이미 잊고 있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끼게 된다.
다른 한편 그가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보다는 약간 뒤의 일인데, 잠시 동안 휴학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있을 무렵의 일로서, 아버지로부터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아버지의 의학 논문을 읽음으로써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것이 최초의 동기였다.
이처럼 그는 문학과 의학에 대해 거의 동시에 눈을 뜨게 되는데, 전자는 친우 후고와 함께 독서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후자는 아버지의 감화에 의한 인간적인 성장과 함께 점차 강화된다. 그는 이 무렵의 체험을 《젊은이의 변모》에서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