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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사르비아총서 616)

헤르만 헤세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등지를 가보고 스리랑카를 거쳐 돌아온 것은 1911년, 그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었다. 이 체험이 구체화되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922년의 일이었는데, 그 수확이 바로 '인도의 시'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싯다르타(Siddhartha)≫이다. 헤세는 스스로 자처한 것처럼 동양적인 구도자요, 은둔자였고 끝없는 내면적 성찰에 의하여 자신을 해체시킨 탐구자였다. 1,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반전주의자로서 박해와 추방과 망명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헤세, 그를 끝으로, 한 시대의 유랑인의 고뇌는 끝났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가 그린 작중 인물들의 번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헤세의 번뇌는 인간 본성의 근원에 그 뿌리를 둔 것이기 때..
헤르만 헤세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등지를 가보고 스리랑카를 거쳐 돌아온 것은 1911년, 그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었다. 이 체험이 구체화되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922년의 일이었는데, 그 수확이 바로 '인도의 시'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싯다르타(Siddhartha)≫이다.

헤세는 스스로 자처한 것처럼 동양적인 구도자요, 은둔자였고 끝없는 내면적 성찰에 의하여 자신을 해체시킨 탐구자였다. 1,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반전주의자로서 박해와 추방과 망명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헤세, 그를 끝으로, 한 시대의 유랑인의 고뇌는 끝났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가 그린 작중 인물들의 번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헤세의 번뇌는 인간 본성의 근원에 그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구도자적 기질이 10여 년 전에 가졌던 동방 여행과 여러 해에 걸친 인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불교에 대한 열정과 어우러져 ≪싯다르타≫라고 하는 한 작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싯다르타'가 도달한 경지가 헤세가 도달한 최고ㆍ절대의 경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을 '불타'로 하지 않고 세존(世尊)의 출가 이전의 이름을 빌려 쓴 것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다.

헤세는 성도(成道)한 뒤의 불타보다도 생에 대한 번뇌로 출가하여 구도하기까지 불타가 걸었던 수행 과정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깨달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도정(道程)과 그 비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부제가 가리키는 바대로 '인도의 시'인 동시에 내면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던 헤세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헤세는 가계상(家系上)으로도 인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양친과 외가의 조부모가 모두 개신교의 전도사로 인도에 체재한 바가 있으며, 특히 조부는 인도어 학자였다. 그러므로 헤세는 어느 작가보다도 인도와 친숙했다. 이러한 가계상의 특수성 때문에 ≪싯다르타≫는 간혹 서구인에게 인도와 불교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씌어진 것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며,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비친 불교관의 한 단면이어서 서구인에게 피상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은 앞에서 말한 헤세의 구도자적 자세를 간과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서구인에게 불교를 소개하거나 불교의 본체(本體)를 캐내거나 아시아를 예찬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그런 의도였더라면 그는 주인공을 완성자요, 선각자이며 해탈자인 불타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며, 구도의 도상에 있는 싯다르타에 그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마지막 장에 '사랑'을 내세움으로써 속세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도록 사랑을 금한 불타의 가르침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헤세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불교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평자(評者)들의 단견이라 하겠다. 불타의 사랑은 속인의 머릿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과는 달리 그 뿌리가 깊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구조 또한 특이하다. 원래 '싯다르타'라는 명칭은 불타의 속명(俗名)인데, 이 작품에서는 싯다르타로 하여금 세존인 '고타마'를 찾도록 함으로써 실제상으로는 같은 인물을 작품에서는 두 명으로 나누어 놓은 셈이다. 또한 싯다르타가 이미 성불한 '고타마'의 설법으로도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스스로 구도하도록 한 점에서는 이 작품에 실명(實名)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같은 인물 설정은 '시간'을 초월한 불교의 가르침을 작품에 전용했다고 볼 수 있으며, '변화가 바로 항상(恒常)'이요, '윤회가 바로 열반'이며,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불교의 본질을 교묘하게 나타낸 작가의 기교로 높이 평가할 수가 있다. 한 얼굴에 수천 명의 얼굴이 함께 어울려 강물처럼 흐르고, 이 강물이 다시 수증기로 하늘에 올랐다가 구름이 되어 다시 땅으로 내리는 끝없는 윤회를 헤세처럼 은은하게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만년에 이르러 헤세가 한 말은 이 작품의 먼 배경을 짐작케 한다.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걸쳐 내게 끊임없는 영향을 끼친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는 내가 자라난 기독교적이면서도 완전히 범국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풍(家風)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중국 대륙의 위대한 학자들의 가르침이었고, 마지막 한 가지는 소년기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끼친 사학자 야콥 부르크하르트였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독일의 소설가, 시인. 슈바르츠발트의 칼프에서 태어났으며,1919년에 스위스에 정착하여 192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독일 낭만주의와 인도철학에 영향을 받은 작가로 기계화된 도시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의 고독, 지성과 감성 사이의 갈등, 그리고 예술가 또는 방랑자처럼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람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헤세의 소설은 인간의 지적 능력과 감각적인 능력의 종합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크눌프>, <데미안>, <지와 사랑>, <황야의 늑대>,<유리알 유희> 등이 있으며 1964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홍경호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빈 대학에서 수학.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
역서로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릴케), ≪다니엘라≫, ≪선을 넘어서≫, ≪백수선화≫(이상, 루이제 린저), ≪아름다운 유혹의 사절≫(카로사), ≪히페리온≫(F.횔덜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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