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 때에 최자(1188~1260)가 엮은 시화 평론집을 국역으로 담은 책. 시문에 뛰어나 고려 후기 때 크게 이름을 떨치면서 문학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최자가 이인로가 엮은 <파한집>을 보충하는 입장에서 지은 것으로 <속파한집>이라고도 불렀다.
<보한집>에서 최자는 시의 형식적 수사에 치중한 <파한집>과는 다르게 시의 내용에 좀 더 접근하여 새로운 뜻을 담는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저자 : 최자
저자 최자(崔滋, 1188∼1260)는 고려 명종(明宗) 18년(1188)에 태어나서 원종 1년(1260)에 세상을 떠난 학자이자 관료요 시인이다. 최자의 첫 이름은 종유(宗裕) 또는 안(安)이고,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다. 본관은 해주(海州)로서 문헌공(文憲公) 최충의 후손이며, 시호(諡號)는 문청(文淸)이다. 최자는 대내적으로는 고려 왕조가 혼미를 거듭하고 무신 정권이 전횡을 부리던 시기, 대외적으로는 몽골의 7차 침입(1231∼1258)이 있었던 격동의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문인이다. 명문 집안 출신으로 이규보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출세의 길에 접어들었으며, 이런 인연으로 최자의 문학은 이규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특히 최자는 이규보의 ‘창출신의(創出新意)’의 창조적 문학론에 뜻을 같이했던바, ≪보한집≫에서 자주 이규보를 극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렇듯 이규보의 문학관을 잇고 있는 최자는 한국 문학사상 이인로와 함께 문학비평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별히 그는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무엇보다 한시 비평에 해당하는 시화류 ≪보한집≫을 남긴 인물로 오늘날까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저명한 대학자인 최충의 후손으로서 관직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아 ≪고려사≫에 입전(立傳)이 되기도 했다. 최자의 가문은 최충 이후로 세 명의 장원(壯元)과 세 명의 상국(相國), 네 명의 공신을 배출한 명문 귀족으로, 최자 또한 ≪보한집≫에 증조부 최약이 유배를 가면서 남겨 놓은 시 <출수춘주화인증별(出守春州和人贈別)>을 실은 것으로 보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고려 시대에 배출된 수많은 문인·학자들의 문집을 두루 섭렵하지 않고서는 ≪보한집≫에 나타나고 있는 그 시대의 사회 상황과 문학적 성격을 바르게 진단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최자는 독서량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풍부한 독서량과 깊이 있는 시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최자는 ≪보한집≫을 통해 문학의 본질이 무엇이고, 문인들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하며, 창조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가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