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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기 (범우문고 132)

천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세상의 인습과 낡은 도덕관, 권위의식을 지키며 많은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부유하고 행복하게 사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모든 기존 질서와 낡은 권위의식, 그리고 가치관을 거부하며 새 세계를 찾기 위하여 싸우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학대를 받으며 가난 속에서 불행하게 죽어 가야만 하는 천재도 있다. 여기 소개하는 《옥중기》의 작자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de)는 바로 후자에 속하는 인간상이었다. 그 자신이 조금만 세속과 타협을 했다면 부귀와 명성과 존경의 환호 속에서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인간상이 곧 이런 유형의 천재들이다. 그렇건만 세계의 많은 천재들은 찬 겨울 눈보라 속에서 진달래의 꿈을 심다가 역사의 동사자(凍死者..
천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세상의 인습과 낡은 도덕관, 권위의식을 지키며 많은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부유하고 행복하게 사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모든 기존 질서와 낡은 권위의식, 그리고 가치관을 거부하며 새 세계를 찾기 위하여 싸우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학대를 받으며 가난 속에서 불행하게 죽어 가야만 하는 천재도 있다.

여기 소개하는 《옥중기》의 작자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de)는 바로 후자에 속하는 인간상이었다. 그 자신이 조금만 세속과 타협을 했다면 부귀와 명성과 존경의 환호 속에서 일생을 보낼 수 있었던 인간상이 곧 이런 유형의 천재들이다. 그렇건만 세계의 많은 천재들은 찬 겨울 눈보라 속에서 진달래의 꿈을 심다가 역사의 동사자(凍死者)가 되고 말았다. 일반 대중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 사람들에게 화(禍)가 있을 것이라고 월 듀란트는 말했다. 역사적 당대(當代)의 권력은 어느 시대나 현상 고정화 내지 현상유지를 위하여 무수한 길막이를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자 한다. 그 무엇엔가 절망하고 분노하며 저항하고 창조한다.

이래서 어느 특수한 역사의 계절에는 이런 유형의 천재들로 감옥이 만원을 이룰 때가 있다. 저 르네상스의 인도주의자 토머스 모어의 죽음이 새 역사를 열었고, 바스티유에서 프랑스의 자유ㆍ평등ㆍ박애가 준비되었듯이, 레딩 감옥에서 와일드의 예술지상주의가 굳어졌다.

감옥은 대학의 대학이요, 종교 중의 종교며, 지옥 중의 지옥으로, 모든 항복하지 않는 주장들이 모이는 곳이며 용해(溶解)되지 못한 신념들이 쌓이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죄명은 묻지 말기로 하자. 오스카 와일드도 마찬가지다. 그가 바로 남색(男色)사건으로 투옥되었을지라도 저주는 하지 말자. 그는 황금만능주의의 풍조 속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이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추구한 사람의 하나였으며, 인생의 고뇌와 환희를 심장으로 겪은 사람이었으니까.

2년의 옥고(獄苦)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897년 3월 어느 날, 그는 애인이자 친구인 더글러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 《옥중기》를 쓰기 시작했다. 옥고를 치른 사람은 많아도 옥중기는 드물며, 그 귀한 옥중기 중에서도 와일드의 것은 옥중기 문학의 금자탑이 되어 있다. 영혼의 아픔을 종교적인 참회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나 사상과는 좀 동떨어진 글이 바로 《옥중기》라고나 할까. 반도덕적이요 비종교적인 그가 왜 《옥중기》에서는 기독교적인 참회를 했는지 그의 생애를 한번 살펴보자.
오스카 와일드

뛰어난 구술가이자 당대를 호위한 유미주의자.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와일드는 아일랜드 출신의 다른 유명 작가, 예를 들면 예이츠나 버나드 쇼 등과 마찬가지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그가 살았던 후기 빅토리아 시대, 즉 자못 엄격해 보이는 도덕주의, 위선적인 진지함과 엄숙함이 대중의 삶을 억누르던 시대에 와일드는 내면의 개인주의적인 충동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본성을 찾고자 했다. 이런 그의 기질은 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외양으로도, 그리도 작품으로도 드러났다. 젊은 시인인 앨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한바탕 동성애 사건뿐만이 아니더라도 남자들이 검은색과 회색 옷만을 걸치고 다니던 시절 그는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었으며 머리는 치렁치렁 길게 기르고 단춧구멍에는 초록색 꽃을 꽂고 다녔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상류층과 어울리면서도 그가 내적으로 추구한 것은 결국 〈멋〉 아니면 〈미(美)〉였다. 그는 뛰어난 구술사로 수많은 경구가 가득한 희곡을 남겼고, 강연에도 능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그는 1854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시인인 어머니와 유명한 의사이자 민속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유미주의'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1888년 단편집 『행복한 왕자』를 발표했고, 1891년에는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1892년에는 단편집 『석류나무 집』을 발표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발표 당시 격론을 일으켰으며, 특히 『행복한 왕자』는 19세기 말 물질주의가 만연한 영국 사회에 사랑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이상주의를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작품으으로, 비평가 월터 페이터로부터 동화 중의 걸작이라는 격찬을 듣기도 했다.

그는 독설과 위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탁월한 말솜씨로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진지함의 중요성』(1895) 같은 희곡으로 극작가로서 위상을 다졌으며, 1893년에는 비극 『살로메』를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옥중기』를 썼다. 1897년에 출옥하여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1900년에 사망했다.

와일드의 명예는 사후 거의 백 년이 지난 1998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회복되었으며, 이후 그의 삶과 문학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임헌영 역

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를 마치고 동대학원을 졸업해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72부터 1974년까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지냈으며,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월간독서』『한길문학』『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고, 1979년에서 19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하였다. 1998년 복권되어, 현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 『문학과 이데올로기』, 『우리 시대의 소설 읽기』, 『한국현대문학사상사』 등을 비롯해 20여 권이 있다.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에서 그는 식민지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겪어온 외부적 압력과 내부적 분열의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우리 문학이 어떻게 대응해왔는가를 규명함으로써 민족문학의 실상과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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