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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범우문고 239)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저자가 전라좌수사가 된 1952년 1월 1일부터 전사하기 전날인 1958년 11월 17일까지, 6년간의 일기가 기록된 '난중일기'를 담아냈다.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해전뿐 아니라, 저자가 겪은 갈등과 모함, 그리고 고난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저자가 전라좌수사가 된 1952년 1월 1일부터 전사하기 전날인 1958년 11월 17일까지, 6년간의 일기가 기록된 '난중일기'를 담아냈다.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해전뿐 아니라, 저자가 겪은 갈등과 모함, 그리고 고난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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