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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론 (범우문고 083)

1926년과 1938년 당시 민족통일전선의 천명, 앞으로의 중국혁명의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당대회 보고문을 엮은 책이다. <중국공산당과 중화민족>을 부록으로 엮어 일제의 패망 직전, 국공 합작의 마지막 단계에서 국공 양당의 관계와 죽국공산당의 항일 통일전선 전술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1926년과 1938년 당시 민족통일전선의 천명, 앞으로의 중국혁명의 과제와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당대회 보고문을 엮은 책이다. <중국공산당과 중화민족>을 부록으로 엮어 일제의 패망 직전, 국공 합작의 마지막 단계에서 국공 양당의 관계와 죽국공산당의 항일 통일전선 전술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마오쩌둥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호남성 상담에서 출생. 공산당의 최고지도자로서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나아가 문화혁명을 발동한 인물이다. 청년시절에 정치단체인 <신민학회>를 조직 활동했으며, 1919년 5.4운동 중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관심을 갖고 1921년 중국공산당 창립대회에 참가했다. 1925년 5.30사건 후 농민운동에 전념하여 토지혁명을 역설했다. 1927년 호남에서 추수폭동 뒤 정강산을 혁명기지로 노농홍군을 조직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한 후, 1931년 서금의 중화소비에트 임시정부 주석이 되었다. 대장정 뒤 연안을 항일 근거지로 하여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2차 세계대전 후 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 정부 주석이 되었다. 이후 사회주의를 개조할 방편으로 국내건설을 추진, 58년 전중국농민의 인민공사화와 대약진 정책을 폈으나 실패하였다. 1959년 유소기에게 국가주석의 자리를 내주었으나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통제권은 계속 장악했다. 이때부터 중국 내에서는 <모택동 사상>에 대한 찬양과 모택동 신격화가 추진되었다. 1965년 하반기부터 문화혁명이 발동하고 모 주석을 찬양하는 홍위병도 나타났다. 1971년 이후 탈문화혁명의 조류가 커져갔으며, 76년 4월 모택동 정치에 대한 대중반란으로 알려진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9월 4인방에 의한 쿠데타 미수사건으로 부인 강청이 체포되었다. 같은 해 9월 9일 지병이 악화되어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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