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혼』. 나를 잃어버린 것에서 오는 슬픔, 주인의식을 망각한 데서 오는 탄식 그리고 노예의 근성으로 벗어나자는 절규, 이것이 바로 조국의 장래를 근심한 나머지 25일간 단식을 계속하다 목숨을 끊은 신규식의 <한국혼>이다.
신규식
본관 고령.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대종교 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공집이며 호는 예관이다. 관립 한어학교와 육군무관학교를 나와 육군 부위로 진급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죽음으로 항거하려고 음독했다가 실패, 오른쪽 눈만 실명하였다. 그래서 예관이라는 호를 썼다고 한다. 대한자강회·대한협회에 가입하여 활약하며,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다가 국권피탈의 소식에 분개, 다시 음독자살을 기도했으나 대종교 종사 나철에 의해 구조되었다. 1911년 중국으로 망명, 쑨원의 신해혁명에 가담하였다. 중국 국민당 요인들과 한·중 연합단체인 신아동제사를 결성하고, 1915년 박은식과 대동보국단을 조직, 잡지 '진단'을 발간하였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정원 부의장에 선출, 법무총장을 거쳐 1921년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이 되었다. 이 해 광둥의 신생 중화민국 정부에 대사로 부임,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고 중국의 북벌서사식에도 참가하였다. 1922년 임시정부 안에 내분이 생기자 조국의 장래를 근심한 나머지 25일간 단식을 계속하다 목숨을 끊었다. 저서에 『한국혼(韓國魂)』, 『아목루(兒目淚)』가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