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정확한 판본에 의한 텍스트 분석을 바탕으로 한 방정환의 동요 동시 ․ 시 20편, 동화 9편, 수필 8편 수록
“한 포기 풀을 그릴 때, 어린 예술가는 연필을 집고 거리낌없이 쭉쭉 풀줄기를 그린다. 그러나 그 한 번에 쭉 내어그은 그 선이 얼마나 복잡하고 묘하게 자상한 설명을 주는지 모른다.
위대한 예술을 품고 있는 어린이여, 어떻게도 이렇게 자유로운 행복만을 갖추어 가졌느냐!
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 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운동의 창시자이자 선구자로, 문화 계몽운동에 앞장서며 최초의 영화잡지 《녹성》을 발행하기도 했다. 또 '어린이'라는 단어를 공식화하고 1923년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색동회를 조직해, 그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했다. 어린이날은 광복 이후 5월 5일로 정해졌으며, 공식적으로는 1961년 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하였다. 이와 같은 업적은 그를 떠나 한국의 아동문화, 아동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33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정신은 우리 아동문화 운동의 근본 성격일 수밖에 없으며 그의 아동문학관(觀)의 공과 과는 그 자체가 우리 아동문학의 한계이자 극복의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방정환은 1931년에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발자취는 우리 아동문학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어린이 인권운동, 나아가 민족운동에 기여한 바 크다.
방정환(方定煥, 1899~1931)
어린이운동의 창시자이자 선구자.
1899년 서울 야주개에서 상인 집안 장남으로 태어남. 한문에 조예가 깊은 조부의 영향으로 5~7세에 천자문을 배움. 7세 때 보성소학교 유치반 입학. 1907년 무렵 갑작스러운 집안의 몰락. 소년입지회 활동. 1909년 매동보통학교 입학 후 전학, 1913년 미동보통학교 졸업. 선린상고 입학, 중퇴. 1915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취직.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딸 손용희와 결혼,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전문학교 법과 입학, 중단했던 공부를 계속함. 경성청년구락부 조직. 전국을 순회하며 동화구연대회, 소년문제강연회 등을 주도, 청년문화운동과 계몽운동에 앞장섬. 1919년 《신청년》 창간. 최초 영화잡지 《녹성》 발행. 《신여성》 편집고문. 1920년 《개벽》의 도쿄 특파원 임명, 일본 도요〔東洋〕대학 철학과 특별청강생으로 철학, 아동문학·심리학·문화학 등 공부. 1921년 세계 명작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 출간. 번역·번안동화, 소설, 수필, 평론 등 각종 문예활동을 통해 아동문학 보급과 아동보호운동 펼침. '어린이'라는 단어 공식화. 1923년 《어린이》 창간. 색동회 조직, 그 해 5월 1일 어린이날 지정. 1931년 고혈압과 신장염 악화로 그 해 7월 23일 별세.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